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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으로 읽는 반야심경 (공의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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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유식으로 읽는 반야심경 (공의 실천)
정가 18,500원
판매가 16,650원
저자/출판사 요코야마 코이츠/민족사
적립금 830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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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419
발행일 2016-10-10
ISBN 9788998742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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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이 책은 요가 팔식 삼성이라는 유식사상의 용어를 사용해서 반야심경을 해설한 것이다. 이전의 반야심경 해설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조금 위화감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불교가 지향하는 목표는 오직 하나다. 불도가 지향하는 정상은 '공', 다른 말로 '무아'를 깨닫는 것이다. 이 책은 그곳에 닿는 여러 길 중 유식이라는 길을 설명한다.

저자소개

저자 : 요코야마 코이츠

저자 요코야마 코이츠는 1940년 생. 동경대학 농학부 졸업, 동경대학 인도철학·불교학과 및 대학원 졸업. 릿쿄우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릿쿄우대학 명예교수, 정안단기대학 부학장. 저서로는 『십우도 입문』, 『유식이란 무엇인가』, 『유식이라는 삶의 방식』, 『마음의 비밀』(민족사, 2013), 『유식입문강좌』, 『알기 쉬운 유식』, 『유식불교사전』등이 있다.

역자 : 허암

역자 허암 김명우는 불교학자. 대학에서 유식사상을 전공하여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범어로 반야심경을 해설하다』, 『왕초보 반야심경 박사 되다』, 『유식의 삼성설 연구』, 『유식삼십송과 유식불교』(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마음공부첫걸음』(2012 반야학술 저역상 수상), 『불교에서의 죽음 이후, 중음세계와 육도윤회』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반야바라밀다심경』, 『유식불교, 유식이십론을 읽다』, 『마음의 비밀』, 『티베트불교철학』(2009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학술도서, 공역)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는 말

제1강 반야심경과 공의 실천
제2강 공과 관자재보살
제3강 반야바라밀다와 오은
제4강 비유비무의 중도
제5강 색즉시공 공즉시색
제6장 유위와 무위
제7강 불생불멸ㆍ불구부정ㆍ부증불감
제8강 오온ㆍ12처ㆍ18계
제9강 정문훈습과 무분별지
제10강 유무를 초월한 생각[사고]
제11강 집착을 떠나기 위한 '무'
제12강 삼성과 삼무성
제13강 유식사상의 자연관ㆍ우주관
제14강 사성제
제15강 무소득과 유식성
제16강 마음에 가애가 없다
제17강 공포
제18강 전도와 열반
제19강 중도의 중요성
제20강 부처님의 팔상도와 무상정각
제21강 진여의 길
제22강 진언이란 무엇인가
제23강 아뢰야식연기의 세계

역자의 말
색인

책 속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에는 ‘인(因)’과 ‘연(緣)’이 있다. ‘인연생기(因緣生起)’라고도 하는데, 인과 연에 의해서 모든 것은 생긴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중에 인은 근본적인 원인[직접적인 원인]이며, 연은 보조적인[부차적인] 원인이다.
최근 젊은이들이 살인 사건뿐만 아니라 여러 범죄를 일으켜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젊은이들뿐만 아니다. 경찰을 비롯해 관료 · 경제인 · 정치인에 의해 여러 부정이 저질러지고 있으며, 일반인의 윤리 도덕심 결여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 · 경제 · 교육적인 측면에서 대응하여 시정하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불교적으로 말하면 모든 연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직접적인 원인인 인(因)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도덕윤리 교육을 다시 부활시켜 민심(民心)을 바르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런 것은 위에서 강요하는 방식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을 변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야말로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사회의 변혁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의식을 변혁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p.38)

부처님은 ‘여실지견(如實知見)’, 즉 ‘여실하게 알고 보는 지혜’를 강조했다. 내가 한가운데 있는 세계이자 타인이 대신해 줄 수 없는 세계, 이 세계 전체가 도대체 어디로부터 현현한 것인가. 여실지견이라는 가르침을 발판삼아 외부로부터 부여된 정보를 전부 차단하여 조용히 자신의 마음속으로 침잠해 ‘무엇인가’, ‘왜인가’를 추구한다. 그리하여 사실을 사실로서 관찰해 가면 ‘아! 아뢰야식은 있구나’라는 확신이 서게 될 것이다. 이처럼 사실을 사실로서 관찰하는 방법이 요가[유가]다.
사실을 사실로서 볼 수 있다면,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를 어디에서 찾아도 찾을 수 없다. 단지 다른 것에 의해 살려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라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예를 들어 눈을 떠보자. 그 순간 보고 싶지 않아도 시각이 작동하여 보지 않을 수 없다. 즉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에 ‘누가’ 보는가라고 묻는다면 ‘내’가 보고 있다고 답한다.
그러나 ‘나’라는 언어가 가리키는 것을 결코 발견할 수 없다. 내가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다. 이 사실을 ‘의타기(다른 것에 의지하여 일어나다)’라고 한다. 마음은 다른 힘에 의해 일어나는 의타기이다. 여기에 나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의타기는 이런 작용이다’라고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선 자기 자신 속의 의타기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하면서 조용히 관찰해 보자. 그리하여 어떤 힘이 작동하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 힘은 불교 용어로 말하면 ‘연기의 힘’ ? ‘의타기의 힘’이다. 그리하여 연기의 힘에 의해 일체 현상세계는 아뢰야식 속의 종자에서 생긴다고 유식학파는 주장한다. 이것을 아뢰야식연기(阿賴耶識緣起)라고 한다.(pp.115-116)

부처님은 무상정등각을 획득하고 ‘불생불로불사의 세계를 접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거기까지 갈 수는 없어도, 반야 지혜의 빛을 자신 속에 키워나가면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것이나 죽어가는 것을 차츰 해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의타기성으로서의 마음을 자신의 중심에 두고 위로 가면 원성실성의 세계에 이르고, 아래로 가면 변계소집성의 미혹된 세계에 이른다.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까. 이것은 자신의 결의와 노력에 달린 문제다.(p.144)

자해행위를 일으키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그중에 전자는 후천적으로 심어진 자아의식에 의한 것이다. 부모에게서 기대를 받고서 ‘너는 이렇게 해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면 ‘나[자신]’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교육이나 환경에 의해 심어진 ‘자신’이라는 자아상(自我像) ? 자아관(自我觀)이 형성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 자아상에 져서 자해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즉 후천적으로 타인으로부터 심어진 ‘자신’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괴로워하는 젊은이는 ‘본래의 자신’을 알지 못하고 ‘허위의 자신’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다. (…) ‘내 손’이라고 했을 때 ‘나’라고 하는 말에 대응하는 것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말의 울림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쓸모없는 놈’이라며 괴로워한다. 또는 나의 인생은 무엇인지, 내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겠다고 괴로워한다. 여기에는 모두 ‘나[자신]’라는 것이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커다란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자아상도 역시 타인에 의해 심어진 자신이다.

출판사 서평

우리나라에서 『반야심경』만큼 불자들에게 친근하고, 자주 독송되고, 사경(寫經)되는 경전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야심경』, 넓게는 그 바탕인 방대한 ‘반야경’에는 공(空)이나 반야(般若)와 같은 용어에 대한 상세한 논리적 해석은 없다. 이 책은 ‘오직(唯) 마음(識)이 있을 뿐이고, 외부세계의 대상(境)은 없다(無)’는 ‘유식무경(唯識無境)’의 입장[유식사상]에서 반야심경의 공(空)사상을 철저히 해설한다. 아울러 유식사상과 반야심경의 가르침을 통해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 책의 저자 요코야마 코이츠 교수는 연구와 수행을 병행하고 있는 일본의 저명한 유식학자이다. 그가 2000년 3월부터 2002년 4월까지 2년에 걸쳐 일본의 흥복사 불교문화 강좌(興福寺佛敎文化講座)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흥복사는 중국 당나라 시대 현장 스님의 제자였던 자은 대사 규기가 창종한 법상종의 일본 대본산이다. 법상종은 인도에서 발생한 유식유가행파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데, 이 학파는 ‘오직 식(識)뿐이다’라는 유심론적 사상을 창출하고, 요가의 실천을 중시한다.

유식사상으로 반야심경의 공(空)사상을 해설!

『반야심경』에서 ‘심(心)’에 해당하는 범어 ‘흐리다야(h?daya)’는 ‘심장(心臟)’을 의미한다. 따라서 『반야심경』이란 삼장법사 현장(玄奬, 602~664)에 의해 번역된 『대반야경(大般若經)』 600권에 수록된 반야(般若)사상의 핵심〔심장〕을 짧은 문장으로 정리한 경전이다.
유식사상은 우선 ‘식(識)’의 존재를 임시적으로 인정하고, 그 바탕에서 실천을 통해 식(識)을 변혁하여 ‘공(空)’에 이르고자 하는 사상이다.
마음[식]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식사상과 존재하는 모든 것을 부정하는 공사상은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유식에서 인정하는 마음[아뢰야식, 말나식, 의식]도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임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유식에서도 공사상처럼 마지막에는 마음마저 부정한다. 따라서 유식의 마지막 지향점은 『반야심경』에서 주장하는 공(空)과 다르지 않다. 서로 방법론적 차이만 있을 뿐이다.
실천적인 면에서 반야경은 반야바라밀다를 닦는 것을 중심적으로 설하는 반면, 유식의 경론(經論)은 요가[瑜伽]의 수행을 강조한다. 또한 유식에서는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말나식(末那識)·아뢰야식(阿賴耶識)의 여덟 가지 식이나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타기성(依他起性)·원성실성(圓成實性)의 삼성설(三性說)을 설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런 점을 바탕으로 삼아 요가·팔식·삼성이라는 유식사상의 새로운 용어와 ‘일인일우주(一人一宇宙, 한 사람 한 사람 각자는 하나의 우주다)’, ‘생의 존재(の存在)’ 등과 같이 일본어 사전에도 없는 아주 독특한 용어를 사용하여 『반야심경』을 해설한다.

일상에서 어떻게 공(空)을 실천할 것인가

유식학파에서 강조하는 요가란 내용적으로는 ‘지관(止觀)’이다. 지(止)는 조용히 가라앉은 마음을 의미하고, 관(觀)이란 관하다, 즉 관찰하는 마음이다. 비유하자면 파도가 잠잠해진 물이 지(止)의 마음이고, 그 위에 둥근 달을 그대로 비추는 작용이 관(觀)의 마음이다. 우리들의 평상시 마음은 산란심(散亂心), 이른바 어지러운 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보아도, 무엇을 말해도 전부 틀린 것이다. “지금 나는 당신을 보고 있다”고 말하지만, 당신의 모습 그 자체를 나는 결코 볼 수 없다. 저자는 이를 ‘일인일우주(一人一宇宙, 한 사람 한 사람 각자는 하나의 우주다)’라고 부른다. ‘나’를 보고 있는 ‘당신’은 ‘나’라는 우주, 즉 내 마음속에서 만들어 낸 영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인일우주’를 유식 용어로 말하면 ‘인인유식(人人唯識, 한 사람의 세계는 각자의 잠재적인 근본심인 아뢰야식이 변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저자는 우리가 우선 이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서, 그 위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어떻게 ‘공(空)’을 실천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기독교에는 ‘신(神)’이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 이에 상당하는 말이 있다면 ‘청정(淸淨)’일 것이다. 그러나 ‘청정하게 되자’는 것은 불교만이 아니라 이슬람교 ? 기독교 등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바다. 우리들이 만약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청정하게 된다면 선악을 구별하는 장애가 없어지고, 선악에 구애되지 않는 대범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반야심경』의 공(空)은 이러한 대범한 마음을 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힌두교[바라문교]에서는 선을 쌓아 사후에 천계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불교는 이러한 생각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여 천계에 태어나더라도 그곳은 여전히 괴로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불교는 선악을 벗어난 공의 세계에 이르러 모든 것은 공하다고, 즉 ‘중(中)’이라고 알고, 그 ‘중’을 실천하여 최종적으로는 열반에 이르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이처럼 인간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창한 것이다. 이처럼 이분법적으로 사고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것, 즉 ‘공을 실천’하는 것을 지금부터 『반야심경』에서 배워 보자.
(본문 중에서)

저자는 보통 사람들은 ‘자타’, ‘선악’ 등과 같은 차별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저 사람 싫어, 이 사람은 좋아’라고 생각하고, “여름은 더워서 싫고 가을은 선선해서 좋아”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범부는 이런 생각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온갖 것들을 갖가지로 차별하고 분별한다. 그러나 이런 ‘분별된 존재’는 실체가 아니고 우리의 생각과 언어에 의해 형성된 것일 뿐이다. 저자는 분별 중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선하다’ ? ‘악하다’는 판단이라고 말한다. 이것으로부터 옳고 그름, 즉 일상에서 ‘이것은 좋고 저것은 나쁘다’는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공(空)’ 사상을 알지 못하고, ‘변계소집성의 세계’만이 전부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은 이러한 판단 속에서 우왕좌왕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특히 수많은 정보가 흘러넘치는 현대 사회에서, 젊은이들은 그 정보에 의해 심어진 생각들로 인해 어떤 곳으로 가야 할지 모른 채 우왕좌왕 살면서 미혹하고 괴로워한다고 통탄한다. 이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반야에 의해 진여를 증득해야 하는 것이다.

우왕좌왕하는 삶의 방식을 바꾸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를 위해서는 우선 ‘분별된 존재’로부터 ‘생의 존재’로 되돌아와야 한다. ‘생의 존재’로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조용히 앉아 요가나 선정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날숨과 들숨과 하나 되어 앉아 있을 때는 자신도 타인도 유도 무도 없다. 어떤 분별된 것도 없다. 그런데 앉아 있을 때, 그냥 멍하니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언제나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추구하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 ‘나는 누구인가? 타인은 누구인가? 우주는 무엇인가? 사는 것이란, 죽는 것이란 무엇인가?’라고 격렬하게 질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즉 발보리심(發菩堤心), 발심(發心)을 가져야 한다. 발심은 잠재적이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발아(發芽)시키느냐가 (본문 중에서)

저자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생각하기 전에 우선 ‘나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나는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해 불교는 존재를 ‘공(空)’이라고 관찰하고, 그 지혜를 발판으로 살아가는, 즉 ‘실천’해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저자는 나와 내 주변에 펼쳐져 있는 존재 전체는 ‘공’이라고 관찰해야 한다는 것이 『반야심경』에서 설하는 가르침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왜 ‘공’인가? 간단히 말하면 삼라만상은 연기에 의해 이루어져 있고, 연기이기 때문에 공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연기이기 때문에 공이다’라는 불교의 근본 가르침을 어떻게 현실 속에서 생각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저자는 ‘연기이기 때문에 공이고 무아無我’라는 모든 불교의 가르침을 관통하는 슬로건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함으로써 자타불이(自他不異)의 평등한 세계와 접하자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야말로 모든 것의 근본 원인이다. 때문에 사회의 변혁은 사회를 구성하는 개개인의 의식을 변혁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식으로 읽는 반야심경』은 개개인의 의식을 변화함으로써 이룩될 수 있는 이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1. ‘나[자신]’와 ‘사물[대상]’은 마음속에서 생각과 언어에 의해 만들어진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2. 허망한 ‘나’와 ‘사물[대상]’에 대한 집착을 없애기 위해서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자. 이를 위해서 요가를 실천하거나 일상생활 속에서 ‘지금·여기’와 하나가 되어 무분별지로 살아가자.
3. 자신의 심층심(深層心)부터 정화하고 동시에 다른 것에 의지해 살아가는 내 ‘생명’ 에너지를 타인을 위해 사용하며 살아가자.

책속으로 추가
그렇다면 이와 같은 자아상을 설정하고 자신에게 집착하게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런 메커니즘을 유식사상에서는 말나식으로 설명한다. 표층심에서 ‘자신[나]’라는 의식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주전자에서 끓어오르는 수증기와 같은 것으로, 심층심에서 언제나 끓고 있는 자아집착심이 있다는 것을 유식학파의 사람들은 발견했다. 이 자아집착심을 ‘말나식’이라고 이름하였다. 이 심층에 자든 깨어있든 움직이든 말나식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표층의 자신이 ‘나’라는 의식을 일으킨다. 유식학파 사람들이 발견한 말나식을 배우는 것이 ‘나’는 무엇인가를 추구해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또한 실제로 요가나 선정을 닦아 표층의 마음을 안정시켜, 스스로 말나식에 접촉하게 되면 삶의 에너지가 보다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다.
(pp.299-302)

의식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따라 인생은 상승할 수도 하강할 수도 있다. 이것은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하는 것은 좀처럼 힘들다.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부터 산뜻하고 확실하고 상쾌하게 하기 위해서는 심층부터 마음의 정화를 목표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본래 인생에는 여러 가지 일이 생긴다. 병에 걸릴 수도 있고, 타인과 대립도 있을 수 있다. 인간관계도 고민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때야말로 ‘염(念)’을 일으켜 ‘좋아!’라는 기력으로 대처해 보자. 이때 아뢰야식연기를 떠올려 보자. 연기의 도리를 생각하고, 가능하다면 진여의 도리에 이르고자 하는 결심을 일으켜서 구체적인 대립의 장소에서 일인일우주(一人一宇宙)의 세계를 점차로 정화해 가는 것을 목표로 하자. 이 정화된 일인일우주의 세계가 점차로 증가하는 것에 의해 가정 ? 사회 ? 국가 ? 세계가 점점 평화롭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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