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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전면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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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상품명 예수는 없다 : 기독교 뒤집어 읽기 (전면 개정판)
정가 14,000원
판매가 12,600원
저자/출판사 오강남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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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수 392
발행일 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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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예수는 없다』는 2001년 처음 출간된 이래 40쇄를 찍는 동안 이 책은 근본주의 교단이 대부분인 한국 기독교계를 통렬히 비판함으로써 수없는 찬반 논쟁을 낳았다. 저자는 우리 교회의 교리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유아기적 태도와,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현대의 가치에 맞지 않게 그 내용을 고수하려는 문자적, 율법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상업주의에 찌든 교회에 얽매이기보다 성경과 예수가 진정으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많은 기독교인에게 자기 종교를 되돌아보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저자소개

저자 오강남은 우리 시대 대표적 비교종교학자인 오강남은 서울대학교 종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 대학교(McMaster University)에서 「화엄(華嚴)의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 D.)를 받았다.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종교학과 명예 교수로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의, 강연을 하고 있다.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 등의 객원교수, 북미 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merican Academy of Religion)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으며, 제17회 《코리아 타임스》 한국현대문학 영문번역상(장편소설 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다양한 분석을 담은 『종교, 심층을 보다』, 『아하! 오강남 교수가 속담에서 건진 작은 깨달음』,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 『세계 종교 둘러보기』, 『종교란 무엇인가』, 『또 다른 예수』,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공저) 등이 있고, 노장 사상을 풀이한 『도덕경』과 『장자』가 있다. 
번역서로는 『종교 다원주의와 세계 종교』, 『살아 계신 붓다, 살아 계신 예수』,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기도: 영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수의 기도』, 『데이비드 스즈키의 마지막 강의』, 『내 인생의 탐나는 영혼의 책 50』 등이 있다.



목차

개정판을 내면서 
감사의 말 
그런 예수는 없다 
“과연 교회 안에 구원이 있을까?” 
들어가며 새도 가지를 가려 앉는다 

Ⅰ.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 아빠 최고” - 자라나는 믿음 
무엇이 문제인가? 
기독교 패러다임의 천이 
벌거벗은 임금님과 당나귀 귀 임금님 
- 정직한 믿음과 무오설(無誤說)의 무요(無要) 
허스키와 진돗개 - 내 종교만 종교인가? 
세 부류의 사람 
신앙의 여섯 단계 
두 가지 사유 방식 

Ⅱ. 성경대로 믿는다? 
김 목사의 성경관 - ‘성경대로’ 믿는다? 
흥부전과 성경 - 성경을 ‘믿는다’? 
창조 이야기의 딜레마와 교훈 
아담의 갈빗대? 
선악과 - 이분법적 의식의 출현 
노아 홍수를 따져보면 
경상도 시리즈와 성경 
성경은 하늘에서 떨어진 책인가? 
단군신화와 기독교 
베들레헴과 백두산 기슭 
성경이 사람을 죽이는 몇 가지 경우 
예수님의 성경 읽기 - ‘환기식 독법’ 
산타 할아버지는 언제 오시는가? - 두 가지 문자주의 

Ⅲ. 잘못된 신관은 무신론만 못하다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신은 남자인가? 
하나님 어머니 
실제적 다신론 
실제적 무신론 
부족신관 
자기 백성밖에 모르는 신 - 출애굽 이야기 
잔인하신 신 - 가나안 정복 이야기 
장애인을 차별하는 신 - 제사장 제도 
율법주의적 신관 
왕으로서의 신 | 율법주의적 믿음과 삶 
조건부 신관 - 이기적 신앙 
스스로 신이 된 사람들 
신과 생태계 문제 
신은 존재냐 비존재냐? 
어느 신학자의 신관 
초자연주의 신관 | 흔들리는 신관 
초월이냐 내재냐 | 초월도 내재도 

Ⅳ. 예수는 없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가? 
예수님의 성생활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탄생 이야기에 얽힌 몇 가지 의문 
동정녀 탄생의 신학적 배경 
역사적으로 ‘재맥락화’된 예수 
청년 예수 
싸움꾼 예수 
싸움 말리는 예수 
예수님을 어떻게 볼까? 
성불하신 예수님 
자비 - 어머니의 태처럼 
다석 류영모의 예수님 
함석헌과 간디와 틱낫한 스님의 예수님 
또 다른 예수 - 「도마복음」의 예수 
참다운 길벗 

Ⅴ. ‘지금·여기’에서의 mission 
철수의 어린 시절 
어느 신학자의 선교관 
배타주의에서 | 다원주의로 | 지구적 책임 
교회는 강아지 훈련소가 아니다 
하룻강아지 진리 무서운 줄 모른다 
김칫국 - 누가 천당에 갈 수 있는가? 
땅끝까지? 
선한 사마리아인과 유마 거사 
‘지금·여기’에서의 mission - 하나님 나라 건설 
메타노이아 
그들도 우리처럼 

부록 
1. 탈종교화 시대에 종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2. “오강남 칼럼을 읽고”를 읽고 반박에 대한 대답 

끝맺으면서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1997년 말 캐나다 최대의 개신교 교단인 캐나다 연합교회 총회장으로 선출된 빌 핍스(Bill Phipps)가 기자회견에서 자기는 예수의 육체적 부활 등 예수에 대한 전통적 교리를 문자 그대로 믿지는 않는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캐나다 극보수파 기독교인과 특히 한국 교포 기독교인에게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충격은 현재 세계적으로 기독교가 새로운 바람이나 물결에 어떻게 대처하며 어느 정도로 변모하고 있는가를 모르고 있는 사람, 그리고 신앙적으로 계속 성장하기를 멈춘 사람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랄 수도 있습니다. (본문 21쪽) 

성경 십계명에서 “아무 형상(image)이든지 만들지 말라” 했다 해서 그 가르침에 충실하느라 사진 찍기를 거부하고, 그래서 운전 면허증도 내지 못한 사람이 있는데, 김 목사님도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이 말씀을 믿고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가? (……) 이런 질문에 “그건 그렇지만……” 하는 사족을 달려고 하는 마음이 든다면 벌써 성경 ‘그대로’가 아니라, 나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것이다.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처지, 지적 능력, 영적 성숙도, 문제의식 등에 의해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믿음이나 의도와는 관계없이 우리는 성경을 ‘그대로’ 읽을 수가 없다. 결국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나름대로 ‘해석’ 하는 일이다. (본문 78~80쪽) 

상당수의 사람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 때문에 성경이 마치 처음부터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쓰이고 묶여 전해 내려온 책쯤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것은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일점일획’도 틀림없이 완벽한 책으로 쓰였고, 우리가 그것을 읽을 때 일점일획도 고쳐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성경도 어쩔 수 없이 다른 모든 책과 마찬가지로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하나의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본문 110~111쪽) 

종교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종교 생활이 온통 ‘해야 한다’, ‘하면 안 된다’의 연속이라면 그 같은 고역이 없을 것이다. 종교 생활을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온 삶을 억울하게 생각하기까지 한다. 자기는 이렇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자기 친구는 어른이 되어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그런데도 죽어서 똑같이 하늘에 가 똑같은 상을 받는다면 억울하다는 것이다. 자기도 예수님을 모르고 살다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오른편에 있던 강도처럼 죽기 직전에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본문 174~175쪽) 

결국 우리는 대부분의 경우 ‘나의 뜻’을 신의 뜻, 주님의 뜻이라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다. 나의 뜻을 신의 뜻으로 여긴다는 것은 결국 나를 신의 자리에 앉힌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내가 신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의 뜻, 주님의 뜻을 업고 나오는 사람들끼리의 싸움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스스로 신이 된 ‘신들의 전쟁’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돌이나 나무로 새겨진 우상에 게 절하는 것을 두고는 우상숭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에서 상대적인 나를 절대자의 위치로 끌어올리는 ‘자기 우상숭배’가 얼마나 더 엄청나고 무서운 일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본문 183쪽) 

한국의 예에서 보듯이 이런 지적, 영적, 도덕적 성장을 막는 교회가 아무리 커져서 아무리 많은 수의 교인을 확보한다 하더라도, 그 많은 수의 교인 때문에 한국 사회가 좀 더 정의롭고 평화롭고 화기애애한 사회로 탈바꿈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 하는 것과는 거의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 믿어서 혼자 잘살게 될 것으로 착각하고, 잘 믿어서 자기들만 천당 갈 것으로 꿈꾸는 사람 때문에 더욱 극심한 물질 중심주의, 이기주의, 과시 제일주의의 사고방식이 팽배해지는 것이 현실 아닌가? 쓸데없이 사람을 내 편 네 편,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 등으로 나누어 분열과 위화감만 조장하게 된다. (본문 317쪽) 

오늘 독립적으로, 그리고 깊이 사고하는 사람들 중에는 종교가, 특히 그리스도교가, ‘배타적, 반지성적, 문자주의적, 광신적, 독선적, 독단적, 무비판적, 심지어 폭력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현상을 보면서 종교가 이 정도로 부정적일 수 있는가 의아해한다. 이런 이들 중 지금 현재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런 그리스도교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다고 느끼는 이들이 많고, 비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식의 그리스도교에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본문 351쪽) 



출판사 서평

근본주의가 지배하는 한국 기독교계에 파문을 일으킨 명저, 
수많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자신의 신앙을 성찰하게 한 
『예수는 없다』 전면 개정판 출간! 

출간 이후 격렬한 논쟁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한국의 대표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의 『예수는 없다』가 출간 15주년을 맞아 새롭게 태어났다. 2001년 처음 출간된 이래 40쇄를 찍는 동안 이 책은 근본주의 교단이 대부분인 한국 기독교계를 통렬히 비판함으로써 수없는 찬반 논쟁을 낳았다. 
저자는 우리 교회의 교리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유아기적 태도와,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현대의 가치에 맞지 않게 그 내용을 고수하려는 문자적, 율법주의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상업주의에 찌든 교회에 얽매이기보다 성경과 예수가 진정으로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는 많은 기독교인에게 자기 종교를 되돌아보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은 비단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잘 모르고, 심지어 일부 교인의 배타적 태도에 반감을 느껴오던 비기독교인에게도 서양 문명의 근간인 기독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준다. 기독교인이 아닌 이에게는 잔인하게만 느껴지던 구약성서 속 신의 모습, 예수는 과연 하나님인가 하는 문제, 예수는 정말 동정녀에게서 탄생했는지 등 여러모로 의문스럽던 신학적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근거와 이해하기 쉬운 비유를 들어 설명하여, 인문학적 호기심을 가진 일반 독자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입문서로서도 손색이 없다. 
이번 개정판에는 종교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21세기 사회에서 분쟁과 갈등, 심지어 전쟁을 조장한다는 오명을 쓴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최신 글 《탈종교화 시대에 종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와 예수의 114개 어록을 만날 수 있는 「도마복음」을 소개한 《또 다른 예수》 등이 새로 실렸고, 최근 신학계에서 주요하게 논의되는 저서들을 참고문헌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제는 고전이 된 『예수는 없다』, 더욱 친절하고 상세해진 개정판은 더 많은 독자들이 성경과 예수와 신을 제대로 알고, 새로운 신관을 통해 더 깊은 신앙, 혹은 더 지혜로운 삶의 혜안을 갖게 할 것이다. 


‘예수에 관한’ 믿음에서 
예수가 가졌던 것과 같은 ‘예수의 믿음’으로 

이 책은 “과연 교회 안에 구원이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었던 것을 생각하면 파격적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출간 이후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공격받았지만, 지은이는 사실 어느 누구보다 예수를 사랑하는 기독교인이다. 그러나 평생을 동서고금의 종교와 철학을 연구해온 비교종교학자로서, 그는 문자주의와 율법주의에 얽매여 있는 한국 기독교의 경직되고 근본주의적인 행태를 가차 없이 비판한다. 
저자는 성경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책으로 여겨, 그 어구 하나하나를 신의 음성으로 떠받드는 유아적 종교관에 매여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성경의 본뜻을 제대로 알고, ‘예수에 관한’ 상업주의 교회의 가르침을 믿을 것이 아니라 예수가 가졌던 것과 같은 ‘예수의 믿음’을 따르자는 이야기다. 

최근 신학계의 동향은, 앞에서도 약간 언급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믿음(faith about Jesus)’보다는 ‘예수님의 믿음(faith of Jesus)’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수님에 대해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이런저런 교리나 이론을 무조건 믿기보다는 예수님의 믿음, 예수님이 가지고 계셨던 믿음, 예수님이 지니고 계셨던 마음을 알고 우리도 그런 믿음,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숭배하기 전에 그의 신앙이 어떠했던가를 살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뜻이다. (본문 222쪽) 

이를 위해서는 예수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역사적 예수’를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많은 기독교인이 문자주의의 함정에 빠지곤 한다. 문자주의란 성경의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태도인데, 저자는 올바른 기독교인이라면 다른 무엇보다 이 문자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호수아가 해를 보고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수 10:12)라고 하자 해가 정말로 잠시 그 운행을 중단했다고 하는데, 이것을 역사적,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성경을 믿는다는 것인가? 
성경을 믿는다는 것. 그것은 성경이야말로 우리의 ‘궁극적 변화’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음을 열고 우리 속에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우는 것, 우리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이 바뀌어 우리의 삶이 더욱 풍요롭고 자유스럽게 되는 데 성경이 절대적 힘을 가졌음을 믿는 것, 이것이 성경을 믿는다는 것의 기본 의미가 아닌가. (본문 83쪽) 

저자는 성경이 역사적, 과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일차 목적으로 삼은 책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 안에는 현대 지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이야기가 수도 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성경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깨달음을 주려는 것인지 파악하고, 여러 비유와 상징 속에 담긴 깊은 뜻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기존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새로운 관점의 성경 해석 

저자는 개정판 서문에서 “이른바 골수파 근본주의 교단에 속하는 사람이라도, 개인적으로는 자기 교회의 가르침을 100퍼센트 다 옳은 것이라 수긍하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라고 말한다. 독실한 기독교인조차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며 속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던 점들을 저자는 해박한 신학 지식으로 명쾌하게 풀어준다. 
예를 들어, 하와는 아담의 갈빗대로 만들었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종속물이라는 식의 해석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원전을 근거로 들어 반박한다. 

아담의 갈빗대에서 하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갈빗대’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원문은 ‘첼라(tsela)’라는 단어다. 그런데 이 말을 반드시 ‘갈빗대’라 번역할 필요는 없다. 기원전 3세기에 나온 그리스어 70인 역에서,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담의 ‘첼라’에 한해서만은 그것을 ‘갈빗대’로 번역했기 때문에 그 후 계속 ‘갈빗대’로 이해되어왔을 뿐, 그 단어 자체는 그냥 ‘한쪽(side)’이라는 뜻이었다. 「출애굽기」 26장 20절에 보면 “성막 다른 쪽”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다른 쪽’의 원문이 바로 ‘첼라’다. 첼라를 다른 한쪽이라든가 다른 한편으로 번역한다면, 아담의 갈비뼈를 꺼내서 하와를 만든 것이 아니라 아담의 ‘한쪽’을 잘라 하와를 만든 것이 된다. 

그뿐 아니라 신을 남성으로 여기며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는 전통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은 남성이면서 동시에 여성도 되고, 또 남성·여성임과 동시에 이 둘을 다 넘어서서 둘 다 아닌 분이기도 하다.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신을 절대자로 생각한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남녀성을 구유(具有)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에 나오는 신이 반드시 남성으로만 묘사되어 있지 않기도 하다. 

전체적으로 볼 때 성경은 신을 남성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아무리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서 신을 남성으로 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하더라도, 신을 남성으로만 볼 수 없었던 고충이 여기저기 충분히 드러나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신의 이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신의 이름들 중에 히브리어 성경에 2,500번가량 나올 정도로 중요한 ‘엘로힘’이라는 이름은 어원적으로 따져보면, ‘엘’이라는 남성 신과 ‘엘로아’라는 여성 신의 이름을 합한 복합명사에다가 복수를 나타내는 말 ‘임’을 붙여서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엘로힘은 남성 신들과 여성 신들을 총체적으로 대표한 이름으로서 그 속에 남성적인 요소와 여성적인 요소를 함께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신을 남성으로 생각하고, 신의 남성적 요소만 강조함으로써 생기는 불균형과 불합리함을 지적한다. 많은 기독교인이 성경을 근거로 한 성차별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 대한 통렬한 논박이기도 하다. 


다원주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종교관은 무엇인가? 

기독교 역사상 예수를 바라보는 여러 관점이 있어왔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지혜’의 현현으로 보는 것, ‘말씀’으로 보는 것, 인간의 죄를 대신해 희생한 ‘희생양’으로 보는 것, 사망을 이기는 ‘승리자’로 보는 것 등이다. 저자는 이 가운데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다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어떤 예수상(像)이든 당시의 심리적 필요와 사회적 환경에 따라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 관점들이기 때문이다. 
1997년 캐나다 최대 개신교 교단인 연합교회의 총회장으로 선출된 빌 핍스 목사의 인터뷰가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기자: 목사님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믿으십니까? 
핍스: 저는 예수님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계신다고 믿습니다. 예수님은 그 부활 경험의 순간 이후부터 그러하셨습니다. 
기자: 그렇지만 그가 돌아가셔서 죽은 상태로 3일간 계시다가 다시 살아나서 땅을 밟고 다니셨다는 것은? 
핍스: 아니요. 저는 그것을 과학적 사실로 믿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었는지 아닌지 알지 못합니다. (본문 213쪽) 

근본주의가 득세하는 한국의 기독교인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얘기일 수 있으나, 당시 연합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필 핍스 목사의 입장을 전적으로 옹호했다. 핍스의 말은 신학자 사이에서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음에도 아직까지 보수주의 진영의 신학자나 많은 목사와 평신도들은 이런 생각에 놀라워한다. 그러나 현대의 우리는 현대 사회에 요구되는 새로운 기독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다른 문화와 교류가 없던 시절 ‘우리만’ 구원해주시는 종교관에서 벗어나 화합과 평화를 위한 다원주의적 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어느 한 시대에 형성된 기독론은 그 역사적 맥락을 떠나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고, 또 그 시대의 맥락과 관계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반드시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이유가 없다. 따라서 우리도 이 시대의 구체적인 역사 맥락에서 우리의 삶과 정황에 의미 있는 방법으로 예수를 다시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실존적 삶과 직결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본문 262쪽) 

저자는 이렇게 새로운 의미로 기독교와 예수를 해석할 때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한 깨달음을 주는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신학에 관한 최신 글을 수록하고 
다양한 참고 문헌 소개 

이 책에는 초판에 없는 글이 세 편 실려 있다. 《탈종교화 시대에 종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역사적으로 ‘재맥락화’된 예수》, 《또 다른 예수-「도마복음」의 예수》가 그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부록1로 실린 《탈종교화 시대에 종교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인데, 여기에서는 최근 그 입지가 점점 좁아지는 종교의 현실을 분석하고, 지성의 시대에 인류의 화합을 위해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한다. 
《역사적으로 ‘재맥락화’된 예수》는 바트 D. 어만 교수의 저서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에 관해 쓴 글로, 역사적 존재였던 예수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신의 존재로 격상되었는지에 대한 어만 교수의 논의를 소개하고 있다. 예수의 신성을 의심치 않는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예수는 시대를 통해 언제나 재맥락화되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통찰이 빛나는 글이다. 
마지막은 “원자폭탄에 버금가는 신학적 폭발력”을 가진 문헌이라 평가받았던 「도마복음」을 소개하는 글 《또 다른 예수》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114개의 예수 어록인 「도마복음」을 통해 드러나는 예수의 또 다른 모습과 그 의미를 설명한다. 기적을 실행하기보다 ‘깨달음’에 방점을 찍고 말씀하시는 예수를 만날 수 있다. 
이 세 편의 글 외에도, 다양한 참고 문헌과 최신 연구를 소개함으로써, 신학을 보다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추천사] 
이 책은 우리의 신앙을 한번 뒤흔들어 정신을 바짝 차리게 해주는 책으로 일독만이 아니라 재독, 삼독을 권하고 싶다. 21세기에 들어선 오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진정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알아보려는 모든 ‘길벗들’에게 하나의 자극제나 각성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_정대위(전 건국대학교, 한신대학교 총장, 전 캐나다 칼턴 대학교 종교학 교수) 

종교나 철학에 관심 있는 이는 전문가나 비전문가를 막론하고 꼭 읽어야 할 책이다. 한국 기독교가 좋든 싫든 이제 이 책에서 다루는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는 필연적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시대 우리가 심고 키워야 할 ‘기독교의 정신’이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게 될 것이다. _노영찬(미국 조지 메이슨 대학교 종교학 교수) 

이 책은 지난 세기의 신학적 논란을 두루 음미한 보기 드문 신앙론이요, 참신한 신학 입문서다. 복잡한 논쟁점도 알기 쉽게 풀어가며 친절하게 얘기해주는 지은이의 학자적 깊이와 너그러움이 책 전체에 역력하여, 되풀이해 읽을수록 즐겁고 고마운 정신의 필독서다. _전현(미국 시카고 매코믹 신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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