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상품목록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현재 위치
  1. 국내도서
공급사 바로가기
붓다북,불교용품,불교서적,불교사경

허준 평전 (네 얼굴의 유의)

(해외배송 가능상품)
기본 정보
상품명 허준 평전 (네 얼굴의 유의)
정가 20,000원
판매가 18,000원
저자/출판사 김호/민음사
적립금 900원 (5%)
수량 수량증가수량감소
페이지수 280
발행일 2024-01-26
상품간략설명 양장본 (Hard cover)
ISBN 9788937456244
SNS 상품홍보
SNS 상품홍보

개인결제창을 통한 결제 시 네이버 마일리지 적립 및 사용이 가능합니다.

상품 옵션
옵션 선택

(최소주문수량 1개 이상 / 최대주문수량 0개 이하)

사이즈 가이드

수량을 선택해주세요.

위 옵션선택 박스를 선택하시면 아래에 상품이 추가됩니다.

상품 목록
상품명 상품수 가격
허준 평전 (네 얼굴의 유의) 수량증가 수량감소 (  900)
총 상품금액(수량) : 0 (0개)
바로구매하기 장바구니 담기 SOLD OUT 관심상품등록
부처님오신날

이벤트

관련상품

  • 허준&동의보감 (1) 장편다큐멘터리

    13,500원

  • 허준&동의보감 (2) 장편다큐멘터리

    13,500원

  • 허준&동의보감 (3) 장편다큐멘터리

    13,500원

  • 허준&동의보감 1~3권 세트

    40,500원

  • 허준이 한글 이름으로 정리한 동의보감 속 우리약초

    43,200원

* 양장본입니다




수상내역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매일경제 > 2024년 2월 1주 선정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서울신문 > 2024년 2월 1주 선정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조선일보 > 2024년 2월 1주 선정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중앙일보 > 2024년 2월 3주 선정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한겨레신문 > 2024년 2월 1주 선정



책소개

『동의보감』으로 조선의 의료 전통을 집대성한 의학자
실증에 근거해 우리 산천의 동식물 지식을 정리한 자연학자
애민과 제민 정신으로 역병에 맞서 공동체의 안녕을 구한 역학자
조선 최고의 명의, 유의(儒醫) 허준의 일생을 바로 읽는다
조선을 대표하는 명의이자 『동의보감』의 주인공, 평생을 의술과 의학에 헌신한 허준의 삶을 그린 『허준 평전』이 출간되었다. 일찍이 『동의보감』과 허준의 의학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래 조선 시대 의학사와 법의학 연구에서 일익을 담당해 온 역사학자 김호 교수(서울대 아시아연구소)가 그동안 축적한 성과와 새로 밝혀진 사실들을 반영해 허준의 생애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소설과 드라마로 형상화되어 대중에게 친숙한 허준의 이야기는 물론 더 극적이며 흥미롭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어긋나는 점도 많다. 서자 출신으로 내의원 의관에 봉직하며 스스로 목소리 낼 일이 거의 없었던 탓에 허준의 삶에는 사료에 남지 않은 불확실한 지점이 상당하다. 저자는 『양천허씨세보』와 『장성읍지』, 유희춘의 『미암일기』, 성혼의 『우계집』까지 허준을 기록한 각종 자료를 치밀하게 검토하며, 『동의보감』을 비롯해 일상의 구급을 위한 『언해구급방』, 『언해두창집요』, 『언해태산집요』, 감염병에 대응한 말년의 『신찬벽온방』과 『벽역신방』 등 그가 편찬한 의서들의 행간에서 일생을 의학에 투신하며 지향한 바를 읽어 낸다. 이로써 허준을 둘러싼 오해를 걷어 내고 역사상의 실제에 더해 의학자, 자연학자, 역학자로서 허준의 면모를 부각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마침내 동의의 전통을 수립한 의학자

허준(1539~1615)은 사대부 자제들과 마찬가지로 어려서부터 사서삼경 등 유교 경전을 섭렵했으며, 노장과 불교의 서책까지 두루 읽었다. 당대 조선의 사상계는 성리학이 중심이었지만 도가를 지향하거나 실증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들 덕분에 다양한 풍경을 보이고 있었다. 유ㆍ불ㆍ선 삼교를 아우르면서도 성리학의 통치 기획에 부합하는 의서가 필요했다.
인간의 생사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만큼 농업과 의술은 백성의 삶을 안정시키고 선정을 베푸는 데 필수적인 지식이자 기술이다. 조선을 ‘장수하는 땅’으로 만들고자 한 선조는 허준에게 의서 편찬을 명하며 병들기 전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조선의 약재(향약재)를 활용하여 많은 백성들에게 혜택이 미치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조선 사람의 질병은 조선의 환경과 이곳에서 나고 자란 다양한 향약재로 치료할 수 있었다. 그 바탕에 조선의 유구한 향약 전통과 인간의 심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다. 기질(氣)의 차이를 알려면 인간의 보편성(理)에 대한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 조선 사람은 보편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조선인의 기질에 따라 특별했다. 허준의 동의(東醫)는 중국의 남의ㆍ북의에 비해 동쪽 사람들의 기질을 고려하면서, 동시에 인간다움을 갖춘 보편적인 사람을 치료하는 특별한 방법이었다.
『동의보감』의 보편적 인간관은 근본적으로 성리학의 수양론과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을 자연을 모사한 소우주로 설명하고 성리학자들이 원하는 도덕적 삶, 즉 당위(사람다움)의 근거를 자연에 두었다. 인간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이어야 함은 그것이 본성(자연)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법칙과 인간의 윤리를 결합하고 심신의 절제와 조화를 자연스럽고 당연한 삶의 방법으로 제시한 『동의보감』은 조선 성리학의 중요한 정치적 성과였다. 인간의 도덕적 삶과 그 토대인 자연의 원리를 탐구함으로써 『동의보감』은 조선 사회에 깊이 뿌리 내렸으며 질병 치료나 약물 투여에 국한된 단순한 방서(方書) 이상의 의서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허준이 단순한 의원이 아니라 유학을 토대로 불교와 도가의 인간론을 통섭할 수 있는 유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술(仁術)은 곧 인정(仁政)이다
사회적 정치적 실천의 모범을 보인 공공 지식인의 초상

동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허준의 업적은 조선 의료의 오랜 전통 지식을 속방(俗方)으로 집대성한 것이다. 속방 가운데 상당수는 왕실 의료를 담당했던 내의원 어의들의 처방이었기에 『동의보감』에는 조선 왕실의 의약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허준은 민간에서 널리 쓰이던 향약 전통을 수집하고 정리하여 속방의 이름으로 수록했다. 향약재의 명칭과 함께 약재를 채취하고 말리는 방법, 약재를 제조하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기록하여 향촌에서도 쉽게 활용할 수 있었다. 고려 말 이후 수백 년 동안 전래된 전통 의약 지식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던 것에는 허준의 노고가 큰 역할을 했다.
이외에도 허준은 조선의 수많은 생물과 약재들 이름에 한글을 부기하여 민간에서 활용하기 쉽도록 정비했다. 조선에 존재하는 초목과 동물, 날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을 정확하게 명명하고 약재의 향명(조선 이름)을 밝혀 널리 알린다면 약재의 혜택을 누릴 사람도 많아질 것이었다. 향약으로 대체할 수 있는 약재를 굳이 중국에서 구입해 올 이유가 없었다. 명(名)과 실(實)의 상부, 조선 산천의 약재와 향명의 연결은 『동의보감』이 이룩한 가장 어려운 학문적 성취이면서 가장 실용적인 지식이었다.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여러 약제와 음식 처방(食治)이 오늘날까지도 널리 알려지고 활용되는 이유다.
노년에 이른 허준은 1612~1613년에 크게 유행한 온역과 독역에서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역병 의서 집필에 헌신했다. 칠순의 나이에도 난생처음 겪는 당독역(성홍열)을 조사하고 치료하느라 환자들의 임상과 진단을 마다하지 않았다. 역병을 여귀나 마마의 소행으로 보고 약물 치료를 피하던 시대였다. 귀신을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 하늘에 빌거나 음식을 올릴 뿐이던 사람들에게 적극적인 치료를 권하려면 역병의 원인에 대한 합리적인 설명과 설득의 과정이 필요했다. 또한 환자의 증세가 가벼운 단계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변할 때마다 증상에 맞는 구체적이고 손쉬운 처방을 제공해야 했다. 세속의 구태와 금기에 구애되지 않고 새로운 의학 지식을 수용한 허준의 치료법은 『신찬벽온방』과 『벽역신방』으로 결실을 맺었으며,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도 그 증상의 관찰과 묘사가 세밀하다. 주술이나 미신을 배제하고 정확한 진단을 강조한 그의 경험적, 합리적 태도는 후대에도 널리 칭송받았다.
역병 유행은 한 개인의 고통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붕괴를 부르는 심각한 문제다. 역병의 극복은 환자 개인의 감염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데 머무르지 않으며 환자를 돌보는 최소 단위인 가족의 유지와 이를 넘어 향촌 공동체의 안녕이야말로 궁극의 목표였다. 허준은 바로 인술이 곧 인정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강하게 인식하고 실천한 유의였다.

■ 의국의 정신으로 평생 의학을 연구한 허준의 생애

허준은 내의원 출사 전에는 서울과 호남을 오가며 활동한 유의였다. 양친의 집안 모두 무관 출신으로 아버지 허론은 무과에 합격한 후 지방관을 역임했고 외가인 영광 김씨도 전라도 지역의 무반(武班)이었다. 허준의 어머니는 서녀로 지방관이었던 허론의 첩이 되어 서자 허준을 낳았다. 조선의 서자들은 문ㆍ무과 시험에 응시할 수 없었으며 관로 진출에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잡과로 출신하거나 의술을 익혀 지방의 유의로 활동하곤 했다. 유의들은 지역의 양반이나 중앙에 진출한 고관대작의 신병(身病)을 치료하고 그들 가족과 친구들의 건강을 돌보면서 책객처럼 드나들었다.
허준은 젊은 시절 경학과 사서를 읽어 여느 선비들과 다르지 않은 학식을 갖추었지만 과거에 응시하지 않았다. 선조 대의 대표적인 호남 사림 중 한 사람인 미암 유희춘은 사서삼경과 의서에 밝고 경향에 이미 의술로 이름을 떨치던 허준을 잘 알고 있었다. 주요 관직을 역임한 유희춘의 천거로 30대에 내의원에 들어간 허준은 당대 최고의 명의 양예수를 만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이후 허준은 사망할 때까지 내의원 어의로 활동했다. 그만큼 내의원 의관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했다. 한 사람의 몸을 치료하듯 한 나라의 병을 치료하는 의국(醫國)의 정신으로 충만했다. 의학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정치였다. 40대에 진맥에 관한 의서를 평설한 후 허준의 ‘의국의 의학론’은 더욱 깊어진 것으로 보인다.
의술이 더욱 원숙해진 허준은 50대 이후 전쟁 중에 사라진 구급용 의서의 집필에 전념했다. 임진왜란 직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려면 구급용 언해본 의서들이 절실했다. 언해본 의서를 마무리한 후 드디어 1610년에 조선 최고의 의서 『동의보감』의 편찬 작업을 완료했다. 『동의보감』의 간행(1613)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쉬지 않고 1612년과 이듬해인 1613년 발생한 온역 및 당독역의 치료법을 집필하여, 『신찬벽온방』과 『벽역신방』이 연이어 간행되었다. 이처럼 말년까지 감염병 연구에 매진한 허준은 1615년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소개
저자 : 김호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과 경인교육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에 재직 중이다. 조선의 통치 시스템과 위기 극복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미래 지향의 한국학을 모색 중이다.
저서로 『허준의 동의보감 연구』, 『조선 왕실의 의료문화』, 『조선의 명의들』, 『정조의 법치』,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 『100년 전 살인사건: 검안을 통해 본 조선의 일상사』 등이 있고 『신주무원록』, 『다산의 사서학』(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목차

책을 내며
들어가는 글: 역병의 시대에 허준을 생각하다

1 역사 속의 허준
역사와 허구
허준의 젊은 시절
미암 유희춘과의 인연
명의 양예수와 허준의 내의원 시절
인생을 바친 의서 편찬

2 동의의 전통을 수립하다
자연을 닮은 인간
이용후생과 향약
속방의 재발견
구급과 역병 대책

3 조선의 생물을 탐구하다
향명, 말과 사물의 일치
다양한 동물성 약재의 활용
새로운 본초와 자연학의 심화

4 역병에 맞서 백성을 구하다
1612년 온역 발생과 『신찬벽온방』
온역을 물리치는 다양한 방법들
연속되는 당독역 유행과 『벽역신방』
허준의 합리적 태도와 독창성

나가는 글: 네 얼굴의 허준을 마무리하며

연보
참고 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허준은 양반 가문의 후손이지만 서자 출신이었고, 문·무과 합격자가 아니라 천거로 내의원에 입성한 의원이었다. 그의 학문은 성리학을 넘어 도가와 불교를 출입했고, 누구보다 실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조선의 의료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새로운 의학의 도입을 주저하지 않았으며, 오래된 풍속의 편안함을 인정했지만 믿기 어려운 미신들을 배격했다. 특히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질병과 뜻하지 않은 역병의 발생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임란이라는 국가 위기 속에서 백성의 구급을 위한 다양한 실용서가 필요했고 허준은 그 일을 도맡았다. 그의 평생은 유의(儒醫)로서의 공공의 삶이었으며 그의 학문은 공공을 위한 이용후생학이자 실학이었다. -책을 내며(6쪽)

양천 허씨라는 갑족의 후예로서 경(經)과 사(史)를 아우르는 학문적 소양을 갖추었던 허준은 비록 의학에 종사했지만 누구보다 유학자로서의 정체성이 확고했다. 유의는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었다. 인간 본연의 심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었다. 유학과 의학에 모두 해박한 사람만이 유의라는 호칭을 가질 수 있었다. -1장 역사 속의 허준(58쪽)

허준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나 인체를 다스리는 일이 같은 사무라고 단언했다. 사람이 병드는 이유는 경락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혈의 불통으로 표리가 막히고 음양이 혼란해지면 사람이 죽게 되는데 국가의 위기도 기강의 혼란에서 말미암는다. 올바른 것과 그렇지 못한 것들이 뒤섞이고 예법이 무너져 인륜이 사라지면 곧 국가 사직의 위망이 다가온다는 징후다. 진단은 사전에 병의 가능성(예후)을 파악하는 일이다. 좋은 정치가는 각종 국란의 무질서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어야 했다. 허준은 과거에 합격하여 국정 운영에 참여해야만 비로소 제대로 된 공공의 실천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지식인들에게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일’ 또한 중요한 공공 사무임을 각인시켰다. -1장 역사 속의 허준(70쪽)

인체를 구성하는 보편적 원리인 정·기·신을 보존하려면 수양과 섭생이 필요하지만, 환경과 기질의 차이에 따른 고려와 약물(향약)도 필요했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이러한 리(理)의 보편과 기(氣)의 차이를 고려하여 조선의 의학(동의)을 수립했다. (중략) 리·기의 조화를 위해 사전 예방과 사후 의약이 모두 중요했다.
『동의보감』이 환경의 특수성에 골몰하고 기질의 차이에만 집중했다면 그 생명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출간 이후 조선 학자들이 꼭 참고해야 할 서적이 되었을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여러 차례 간행될 수 있었던 인기의 비결은 인간의 본연지성을 보존하려는 『동의보감』의 수양론 덕분이었다. 『동의보감』의 수양론은 한마디로 양생의 정치학으로 고대 이래 동아시아 의학의 보편적 지향에 닿아 있었다. -2장 동의의 전통을 수립하다(94~95쪽)

허준은 인체부터 식물과 어류 및 동물에 이르기까지 각종 약재를 향명으로 표기함으로써 당시 조선의 산천초목에 관한 지식을 정리했을뿐더러 이후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의 토대를 마련했다. 명(名)과 실(實)의 상부 즉 조선 산천의 약재와 향명의 연결은 『동의보감』이 이룩한 가장 어려운 학문적 성취 가운데 하나였다. 『동의보감』에 수록된 수많은 약재의 한자명에 한글로 된 향명을 병기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약재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향약으로 대체할 수 있는 약재를 굳이 중국에 가서 구입할 이유가 없었다. -3장 조선의 생물을 탐구하다(141쪽)

『벽역신방』의 편찬을 계기로 허준의 역병학은 보다 넓은 차원의 사회 역학(Social Epidemiology)으로 발전했다. 역병 환자에 대한 치밀한 진단과 처치, 사회적 환경을 고려한 대응법은 유의, 즉 의원이면서 유학자였던 허준이 생각한 ‘사회 속의 역병’ 덕분이었다. 임상에 임하는 허준은 환자의 병변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했다. -4장 역병에 맞서 백성을 구하다(201쪽)

허준의 경험으로는 두창 환자를 살려 달라고 마마 신에게 빌어 보아야 소용이 없었다. 증세에 맞추어 정확한 약물을 복용해야 했지만, 왕실에서조차 금기를 두려워해 역병 환자에게 적극적으로 복약을 권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미 선조 임금께서 용기를 내어 허준에게 왕세자의 두창 치료를 명령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의약학에 대한 왕의 신뢰에 허준은 저미고와 같은 약물의 효과로 부응하지 않았던가. 이후 많은 사람들이 왕의 실천을 본받아 적극적으로 약물을 복용했고, 열 번 약을 쓰면 열 명이 살아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허준은 의학 지식과 그 효과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를 얻는 일이야말로 의료 혜택의 확산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주술이나 부적보다 합리적인 사고와 이에 근거한 용기 있는 실천만이 역병 극복의 지름길이었다. -4장 역병에 맞서 백성을 구하다(212~213쪽)


상품후기 상품의 사용후기를 적어주세요.

게시물이 없습니다

상품문의하기 모두 보기



붓다북 빠른메뉴

팝업닫기
팝업닫기